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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세상

그의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 나의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 [feat. 김춘수의 꽃]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이름이라는 것.

단순히 입에서 터져나오는 소리에 불과할 지 모르는 그 것.

하지만 그 이름은 한 사람의 의미가 되기도 하고, 인생이 되기도 한다.


같은 이름을 사용하는 수많은 사람들.

그들에게는 그 수만큼의 인생이 있겠지만, 같은 발음의 이름을 사용한다.

하지만 같은 발음의 수많은 이름에는 오직 하나의 인생만을 담고 있다. 

그래서 특별하다. 그래서 소중하다.


대학교 1학년 1학기. 200명이 듣는 (그 시절 가장 큰 규모의) 교양 수업을 들었다.

우리 과 전공 교수님께서 진행하시는 수업이었고, 타 과 학생들이 80%를 차지했다.

나는 전공수업 하나 들은 적 없는 1학년 신입생 나부랭이에 불과했다.

200명 수업의 가장 가운데, 앞자리는 우리과 3,4학년 선배들의 자리였다.

학점을 따기 위해 들으러 온 모양.

중간고사를 준비하던 무렵으로 기억하는데, 교수님이 수업 중간에 질문을 하시면서

"대희가 말해볼래?" 라고 말씀하셨다.

충격. 교수님이 대화 한 번 해본적 없는 내 이름을 기억하고 계셨다.


나는 온달이라는 필명을 오래토록 사용하고 있다. 야구 유니폼에도 ONDAL 이라고 이름을 표기해놓았다. 이제는 나의 또 다름 이름이, 의미가 되어가고 있다.



군대를 다녀와서 이번엔 전공으로 그 교수님의 수업을 듣게 되었다.

약 2~3년의 시간이 흐른 후였는데, 2번째 강의 때 수강생 60명 중 2/3가량의 이름을 외우고 계셨다.

천재인가? 라는 생각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다.

이름을 기억해주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충성하게 된다는 점이다.

나는 교수님에게로 가 한 사람의 의미가 되었다. 물론 아직도 연락을 드리고 있다.


한 사람의 이름을 기억한다는 것!

그리고 그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

생각보다 어떤이에게는 크게 다가갈 수 있는 의미인 것이다.


-끝-


한마디 추가.

예능프로그램에서 연예인이 나왔는데 MC가 그 이름을 잘못 부를 때의 상황을 생각해보라.

'굴욕'이라는 단어가 자막으로 나오기도 한다.

이름이란 그런 의미이다. 존재 자체를 능욕할 수 있기에 더욱 소중하고, 존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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