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색해야지

군대의 기억으로 되돌아보는 보수와 진보의 차이

728x90

2005년 12월이었던 것 같다.

이런 말이 있겠냐마는 이등병 말호봉... 그러니깐 일병으로 진급하기 직전.

우리 중대는 행정병들을 제외하고는 3개의 소대가 있었고, 돌아가면서 배식과 짬통처리를 맡았다.

배식이야 그렇다 치고, 짬통처리는 조금 귀찮은게 있었는데

그 무거운 짬통을 철로된 수레에 싣고 짬처리장으로 끌고가 짬처리를 해야 하는 것이었다.

더러운것이 힘드냐 하면 사실 그렇진 않다.

군대는 생각보다 훨씬 청결한 공간이고, 이 음식들은 조금 전 까지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으니...

 

여름에는 금방 생기는 벌레 때문에 조금 힘들 수 있으나, 정말 고된 것은 겨울이었다.

철로 된 수레는 손에 물기라도 조금 있으면 손이 달라붙을 정도로 차가웠다.

이 차가운 수레를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어서 짬처리장까지 가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그러던 중 중대장님을 비롯한 전 중대원 정신교육 시간이 있었다.

중대장님은 일장연설을 늘어놓으셨고, 마지막으로 '중대원들의 의견을 듣는 시간'이 다가왔다.

군생활 중 힘든 일이 있는가?

라는 어쩌면 뻔한 질문.

 

이등병들에게 가장 힘든 것은 사실 일병 상병 고참들이지만 이걸 어찌 그들 앞에서 말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중대장의 질문에 대답을 안할 수도 없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그 수레였다.

한 겨울 수레를 밀고 가는 것이 어렵다는 명확한 문제점이 있었고,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쉬웠다.

'고무장갑'

문제점과 함께 매우 쉬운 해결책을 제시했고, 중대장은 이 질문과 해결법에 대해 아주 만족을 하고 돌아가셨다.

아마도 보고하기 좋은 건수라서 그랬을 듯 싶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시작이 되었다.

고참들의 인식은 나와는 달랐던 것 같다.

 

나는 문제가 있으면 '해결'을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고참들은 '내가 겪었던 문제를 왜 너는 겪지 않으려고 하는거지? 왜 바꾸려고 하는거야?' 라며 나를 소위 갈궜다.

'고참들은 그런 생각 못해서 참아가면서 짬처리 했겠냐?'라는 방식.

 

내가 힘들었으니 다음 세대는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소위 개혁과 변화를 원하는 이들이 진보.

내가 힘들었으니 니들도 똑같이 힘들어야지.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보수.

그리고 그 보수의 기저에는 이런 생각도 있을 것이다.

'난 이미 지나왔으니 그 문제는 내 것이 아니야. 니들만 뺑이치면 난 편할 수 있어!'

 

이와 비슷한 문제는 또 있었다.

우리가 이등병 때는 걸레를 빠는 방법도 따로 있었다.

걸레를 접는 방법부터 비누칠을 하는 방법까지~

사실 그 방법대로 하면 비누칠을 여러번 겹쳐할 수 있어 거품이 잘 나고 깨끗하게 빨 수 있긴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방법은 역시 걸레를 깨끗하게 빨기 위함이지,

그렇게 비누를 뭍히는 것이 절대선이기 때문은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우리가 일병~상병 정도 되었을 즈음,

내 동기놈이 후임을 아주 죽일 듯 갈구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걸레를 가르쳐준대로 빨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빨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참나...

어이가 없어서...

나와 같이 이등병 때 그렇게 갈굼을 당했던 놈이 후임들한테 이런걸로 화를 내고 있었다니..

그만 하라고 하고 나왔던 기억이 난다.

우린 청소 자체를 깜빡해서 많이 혼났었는데 나름 청소 꼼꼼히 하고 걸레를 빨고 있는 후임한테 그런 갈굼을 해서는 안되지 않는가?

 

진보와 보수가 절대적인 선과 악의 기준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를 진일보 시키기 위한 태도를 가진 쪽이 어느쪽인지는 명확하지 않은가?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