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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해야지

향수 덕질하는 일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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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향수를 좋아하는가.

잘 모르겠다. 언제부터 좋아했는지. 왜 좋아하게 됐는지. 특별한 계기는 없지만 어릴적 엄마 화장대 위 놓여있던 다양한 색상의 쉐도우, 립스틱들보다 향수를 좋아했다. 그 당시 코쿵당했던 향기는 랑방의 잔느. 제작년에 결국 한병 들여서 내 화장대위에도 올려 뒀다. 지금 맡아도 너무나 좋은 향기.


 

탑노트가 뭔지, EDP, EDT, 엑스뜨레, 향조도 뭔지 구분은 못하지만 좋아하는 향기는 있었고, 예쁜 병 디자인에 끌렸다. 그리고 그 병을 장식하는 멋진 화보에게도. 초등학교 6학년 시절 인터넷에서 세상모든향을 검색해 내가 가진 돈으로 살 수 있는 향수가 있는지 검색했다. 세모향에 들어가서, 이리저리 연예인들이 만든 향수들도 보고, 모두를 홀릴 것 같은 화보와 함께 놓여진 향수 바틀을 보며 예뻐서 언젠간 원하는 것들을 내 책상 위에 올려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와중에 사기도 하고, 위시에 올려 놨던 향수들이 안나수이의 시크릿위시, 롤리타램피카, 엠마누엘 웅가로 아빠리시옹, 모스키노의 아이러브, 롤리타램피카,그린티 등등 이쁜 아가들이다. 특히나 시크릿위시와 아빠리시옹, 잔느 정도의 결을 좋아했는데, 그 당시에는 청사과처럼 투명하고, 부드러운 꽃샴푸 향기같은 예쁜 향기를 좋아했다.

 

 

대학생이 되면서 돈을 벌긴 했지만, 그렇다고 몇십짜리 향수를 소비할 능력은 안됐고, 코펙트럼은 좀 더 넓어져 샴푸향을 벗어났다. 러쉬가 한참 인기가 있었고 코를 관통하는 듯한 다양한 향기들도 맡고, 브레스 오브 갓, 이모젠 로즈 등 스모키한 향들도 즐기기 시작했다. 하루는 베르사체 레드진 향수를 3뿌 정도 하고 학교 뒷문에 있었는데 학교 선배가 어디선가 네 향이 난다고 했더니, 여깄었구나! 라고 했던 그날은 신기한 경험이였다. 어느날엔 지금은 향이 달라진 롤리타램피카를 맡곤 이거 내 전여자친구가 뿌리던 향인데, 너도 뿌리네? 하고 스쳐지나갔던 선배도 있었다. 그당시만 해도 바틀이 예쁘면 사서, 내가 좋아하는 향이면 자주 뿌리고, 아님 가끔 뿌리고, 집을 나설때 하는 의식처럼 끼얹고 나갔다. 정말 극호에 반할 것 같은 향이 아니더라도 그 행위를 한다는 것과, 하루종일 내게서 그 향기가 난다는 사실 자체를 즐겼다. 

 

최근 들어 다시 향수 덕질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래봤자 1년 좀 넘었고 향린이다.) 남들보다 평소에 더 다양한 향수를 맡으로 돌아다닌다는 것, 그리고 향수 리뷰 블로그를 쓴다는 것, 그리고 향수를 자주 사고 팔고... 한다, 그리고 평소에 2시간 정도..향수 검색을 하며 들락날락 거린다. (별 것 안한다고 쓰려했는데, 생각보다 많이 시간 소비를 한다.) 돈을 벌기 시작하니 한달에 20~30만원이고 향수에 태우는 나를 보니 사치스럽단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반면에 향수만큼 가성비가 좋은 취미가 있나? 떠올려보면 향수는 가성비 끝판왕의 취미다. 

 

향수를 얼마나 뿌릴 수 있는지에 대해서 다들 한번쯤은 궁금해한다. 아무래도 이 조그만, 눈물보다 작게 찍- 분사하는 액체에 몇천원이 담겨있다고 생각하면 비싸게 느껴지지만 이 액체는 아주 무시무시해서 물과 달리 바로 증발하지 않고 피부에 착- 달라붙는다. 그리고 하루종일 나를 따라다니고 변화무쌍함을 보여준다. 하다못해 작은 반지를 사도 그냥 처음 살때가 즐겁지, 평소에 착용하면 내 일상같다. 옷을 사도 입는 날이 즐겁지, 다른 옷장에 걸어둔 날은 비슷하다. 운동 장비를 사도 쓰는 그 순간이 즐겁다. 향수를 하루종일 사용하는 취미와 같다. 

 

그리고 섬세한 취미를 즐긴다면, 더할나위 없이 재밌는 취미다. 마치 커피를 테이스팅하듯. 와인을 시음하듯, 같은 포도라는 형태에서도 다른 색, 맛, 질감을 내듯이 향수도 원재료인 향료를 어떻게 합치고, 비율을 조정하는지에 따라, 어느 산지의 원재료인지에 따라서 제각기 다른 맛을 낸다. 그래서 다 같은 상탈 향수라도 모든 브랜드의 상탈은 다른 향기다. 또한 내 피부와 쟤 피부에서 다르게 살성을 타기때문에, 완벽한 나의 향을 찾아내는 과정을 즐거울 수 밖에 없고, 실패가 항상 존재할 수 밖에 없다.

 

오늘만해도 어나더와 앱솔루트 상탈을 함께 뿌린 나는 크리미한 상탈 버터에 어나더의 살냄새가 합쳐서 극강의 부드러움 만끽하고 있다. 레이어링하는 재미는 또 어떤가. 그리고 향기는 맡으면 맡을 수록 더 많은 향을 소화할 수 있다. 이전까지는 패츌리는 싫어했지만, 어느날 어떤 향수에서 맡은 패츌리에 반해 이후로는 패츌리도 좋아하게 될 수도 있고, 시더우드의 콤콤함을 사랑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꽃의 향기와 식물의 향기를 맡는 것은 후각에 의존한 여행과 같다. 

 

하나의 조향사를 따라 다니는 재미도 있다. 커정의 하우스를 뒤적이는 하루, 엘레나 선생님의 작품을 쫒는 하루, 티에리뮈글러의 향을 쫒는 하루. 놀랍게도 취향이 비슷한 조향사를 찾아내면 그의 작품은 대부분 맘에 든다고 한다. 브랜드마다, 조향사마다, 향기의 접근을 바라보자면, 마치 작은 스토리보드처럼 느껴진다. 

 

 

 

 

디스커버리를 사는 행위는 매일 다른 향수를 따라 여행하는 기분에 취할 수 있고, 어쩌다 별 다섯개를 주게 되는 취향에 맞는 향수를 사면, 매일매일 그 향을 뿌릴 수 있고, 그 향기를 알게됨에 감사하게 된다. 아무튼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조보이에 라 리브르 데 꼬네상스를 노래하다가 친구가 사주게 되서, 신이 나서 시향기를 또 검색하다가 쓰는 글. 무화과를 찾아 삼만리 쏘다닌, 나에게 완벽한 시트러스 무화과가 다가왔다. 들숨에 새콤함, 날숲에 무화과 잎사귀. 얼른 택배를 받아서....맡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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